미리내 성지는 청년 시절부터 여러 번 성지순례를 다녀온 곳이다.
그리고 올 초 겨울에도 여러 가족들과 함께 미리내 주일미사에 참석하여 가슴이 뛰며
성지의 매력을 느낀 곳이다.
고 백
이해인
당신 때문인가요?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마구 가슴이 뛰어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자꾸만 마음이 바빠져요
가시밭길로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꽃밭으로 보여요
제가 사랑에 빠진 것 맞지요?
<미리내 성지 설명 - 미리내 홈페이지에서 발췌>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한 점 흠결 없이 순교하였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건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파수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교우촌 어른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은 17세의 미리내 청년 이민식 빈첸시오는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님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험한 산길로만 1백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는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미리내에 도착하여 신부님을 무사히 안장 시킬 수 있었다.
미리내 성지(안성시 양성면 미산리)는, 한국 최초의 방인(자기나라 사람)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묘소와, 이윤일 요한 성인의 묘소 유지(遺址), 그리고 <16위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는 거룩한 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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